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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힙스터가 쓴 중국 여행담

글 박수밀 (고전학자, 한양대학교 교수)

연암 박지원은 우리가 자랑하는 최고의 문장가이다. 그는 주류 세계의 격식과 예법을 거부하고 주변인의 삶을 걸어갔으니 진정한 경계인이자 힙스터라고 이를 만하다. 교과서에서만 접하고 끝내기엔 아쉬울 만큼 재미난 여행기, 『열하일기』의 명장면을 살짝 엿보자.


당대의 베스트셀러 여행기

박지원이 조선이라는 좁은 울타리에서 벗어나 넓은 세계를 경험하면서 북학과 이용후생이라는 큰 비전을 품게 한 사건이 40대 중반에 경험한 열하 여행이다. 1780년 5월 25일, 연암은 중국 사신단의 자제 군관이 되어 마침내 그토록 고대하던 북경 여행길을 떠난다. 사신단이 북경에 도착했을 때 황제는 북경에서 4백 리 떨어진 열하에 있었고, 이 예기치 않은 상황 덕분에 연암은 조선 사신으로서는 처음으로 열하를 다녀오게 되었다. 여행을 다녀온 후 연압협에 은거하면서 그 시대의 모든 분야와 장르를 담은 역작 『열하일기』를 창작하였다.

살벌한 출국 심사의 풍경

해외로 여행을 갈 때는 몇 단계의 출국 심사 과정을 거친다. 여권과 항공권을 일일이 확인하고, 금지 품목을 조사하기 위해 자동 검색대를 통과한다. 『열하일기』에는 옛날의 출국 심사 장면이 기록되어 있어 흥미를 자아낸다. 국경을 넘어갈 때는 검열관이 여행자의 인상을 일일이 확인하고 철저하게 짐을 검사했다.

바야흐로 사람과 말을 검열하는데, 사람은 이름, 거주지, 나이, 수염과 흉터의 유무, 키의 장단을 적고 말은 털 빛깔을 기록한다. 깃발 세 개를 세워 문으로 삼고 국가에서 금하는 물품을 수색한다. (중략) 종들의 옷을 풀어 헤치고 바짓가랑이를 더듬어 보기도 하며, 비장이나 역관의 행장을 풀어 살펴보기도 한다. (중략) 국가에서 금하는 물건을 갖고 있다 첫 번째 깃발에서 발각되면 중곤을 치고 물건은 압수되며, 가운데 깃발에서 적발되면 귀양 가고, 마지막 세 번째 깃발에서 걸리면 효수(梟首)하여 조리를 돌리니 법을 세움이 대단히 엄격하다.
『도강록』 6월 24일

오늘날엔 유출 금지 물건을 가져가다가 발각되면 물건을 몰수당하는 정도지만 조선시대에는 한층 가혹했다. 첫 번째 관문에서 걸리면 물건을 빼앗기고 곤장을 맞았다. 두 번째에서 걸리면 귀양을 갔고 세 번째에서 걸리면 목이 잘렸다.
하지만, 무시무시한 형벌에도 불구하고 장사꾼들은 몰래 빼돌리는 위험을 감수했다. 당시의 밀반출 금지 품목인 황금, 진주, 인삼, 초피 등은 중국에서 수십 배 비싸서 많은 이윤을 남길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목숨까지도 내놓는 씁쓸한 풍경을 확인한다.

번화가를 거니는 선비의 고독한 마음 풍경

연암 일행은 한양을 떠난 지 두 달 만에야 8월 1일에 북경에 도착했다. 조선의 사신들이 북경에 도착하면 짐을 풀자마자 달려간 곳이 있었으니 ‘유리창(琉璃廠)’이었다. 유리창은 북경에서 가장 번화한 시장으로 중국을 대표하는 문화 중심지이자 서적 출판과 유통의 중심지였다. 유리창엔 조선 사신들이 열망하던 모든 책이 있었으며, 각종 문방사우, 진귀한 골동품, 서화등이 갖춰져 있었다. 조선 사신들은 유리창으로 달려가 각종 책과 문방구를 구입했다.
하지만 유리창을 들른 연암은 뜻밖의 행동을 했다. 그는 홀로 한 누각에 올라 난간에 기대어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뜬금없이 “천하에 정말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여한이 없을 텐데”라고 읊조렸다. 그러면서 나를 알아줄 한 사람을 갈망하는 생각을 내비쳤다.

지금 나는 유리창 안에 홀로 외롭게 서 있다. 내가 입은 옷과 쓰고 있는 갓은 천하(중국)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것이다. 나의 용모는 천하 사람들이 처음 보는 모습이다. 성씨인 반남 박씨는 천하 사람들이 들어 보지 못한 성씨일 것이다. 이렇게 천하 사람들이 나를 몰라보게 되었으니 나는 성인도 되고 부처도 되고 현인과 호걸도 된 셈이다. 거짓 미친 체했던 은나라 기자나 초나라 접여처럼 미처 날뛰어도 되겠지만 장차 누구와 함께 이 지극한 즐거움을 논할 수 있겠는가?
『관내정사』 8월 4일

연암이 유리창 한복판에서 느낀 감정은 군중 속의 고독이다. 북적대는 인파로 가득한 유리창에서 일행은 물건을 사느라 정신없었지만, 연암은 정반대로 물밀 듯한 외로움을 느낀다. 무수한 사람들이 오가는 곳에서 자신을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데 이르러 깊은 고독을 느꼈던 것이다. 그는 이른바 근대 도시의 감수성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하여 유리창은 연암으로 인해 고독이란 이미지와 맞물려 새로운 장소로 거듭났다. 연암은 이처럼 어떤 장소에 가면 뜬금없는 행동을 하거나 그만의 감수성에 젖어들기도 했다. 이는 열하일기의 매력 중 하나다.

이방인과 프리토킹의 비결, 필담!

여행을 가면 짧은 외국어 실력 때문에 난감할 때가 많다. 외국어를 못하면 행동이 위축되고 물건을 살 때 속기도 한다. 연암의 중국어 실력은 짤막한 인사 정도를 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연암은 거리낌 없이 중국인을 만나 자유롭게 대화를 나눴다.
중국어에 서툰 그가 중국인과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었던 비결은 필담(筆談) 덕분이었다. 필담은 붓으로 쓰는 대화다. 한·중·일을 포함한 중세 동아시아는 문화와 말이 각기 달랐지만, 한자라는 공통 문자를 사용했다. 지식인들은 말 대신에 한자를 쓰는 필담으로 정보를 나누었다. 필담을 쓴 종이를 담초(談草)라고 부른다. 오늘날의 녹음테이프에 해당한다. 필담은 중세 동아시아 한자 문화권에서 국경과 민족을 뛰어넘어 지식인들을 소통하게 하는 유일한 도구였다. 연암은 심양에서는 중국 상인들과 밤에 몰래 만나 깊은 우정을 나누었으며 그 사연을 『속재필담』과 『상루필담』에 남겼다. 열하에서는 중국의 학자인 곡정 왕민호와 장장 16시간에 걸쳐 우주와 학문에 대한 깊은 대화를 나누어 『곡정필담』을 남겼다. 『열하일기』의 3분의 1이 필담의 결과물이다. 오늘날 중국어는 간체자로 바뀌었고 우리는 한글을 쓰고 있어서 옛날처럼 한문으로 필담을 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대신 번역기가 있어 짧은 대화는 얼마든지 가능해졌다.
이렇듯 『열하일기』는 이용후생과 북학이라고 하는 거창한 주제를 말하면서도, 여행길에서 겪는 흥미로운 에피소드와 여행지에 관한 각종 정보도 빠짐없이 담고 있다. 여행길에서 겪는 시시콜콜한 사연과 추억, 사기를 당한 경험, 황당한 에피소드까지 흥미로운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래서 열하일기는 각종 인간과 제도에 대한 풍부한 묘사로 생동감이 넘친다. 코로나19로 인해 오늘날 우리는 많은 시간을 갇힌 공간에서 지낸다. 답답한 일상에서 벗어나 색다른 세상을 경험하고 싶다면 인간과 공간을 새롭게 포착하고 문명과 인간의 본질을 예리하게 파헤친 『열하일기』를 읽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