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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파일에도
‘진품명품’이 있다?!

글 김태훈(경향신문 주간경향부 기자)

자유롭게 복제가 가능한 디지털 콘텐츠에도 ‘세상에 단 하나’임을 입증하는 정품 인증서를 붙일 수 있을까. 더 나아가 바로 이 유일무이한 특성을 바탕으로 높은 가치를 매겨 하나의 자산으로 거래될 수 있다면?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한 ‘NFT’(Non Fungible Token, 대체불가능토큰)는 이러한 의문에 대한 확실한 답이다. 원작·원본임을 입증해야 하는 예술품은 물론 유명인의 트윗 한 줄, 인기를 끄는 인터넷 밈의 최초 콘텐츠까지, NFT 기술이 적용되면 희소성에 따른 가치를 인정받는 시대가 왔다.

도대체 NFT가 뭐길래?

아직까지 이름도 뜻도 낯선 NFT는 대체 무엇이고 왜 화제가 되고 있을까. NFT는 블록체인 기술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가상자산이라는 점에서는 비트코인과 비슷하다. 다른 점은 비트코인이 현실의 화폐처럼 누구나 통용할 수 있게 만든 데 비해, NFT는 하나하나가 각각의 고유한 인식값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비트코인은 서로 다른 일련번호를 붙여놨어도 모두 같은 값어치를 하는 지폐에 비유된다면, NFT는 각기 단 한 세트만 발행된 한정판 기념주화라고 보면 된다.
NFT가 일종의 인증서 역할을 하면서 작품의 소유권과 거래이력까지 명시할 수 있기 때문에 소유자는 자신만의 디지털 작품을 갖게 된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유일한 자산이라는 희소성은 특히 예술작품의 속성과 잘 맞아떨어진다. 또 원천적으로 복제가 불가능하게 하는 블록체인 기술 덕분에 모조품이 나오기 어렵고 보다 투명한 거래도 가능해졌다. 예술계에서 NFT가 주목받은 이유다.

‘이세돌의 승리’를 소장할 수 있는 방법

그래서 NFT는 이미 미술품 경매시장에서 돌풍의 핵으로 성장하고 있다. 3월 11일 미국 크리스티 경매에서 ‘매일: 첫 5000일’이라는 작품은 6,930만 달러(약 785억 원)에 팔렸다. 독학으로 미술을 배운 ‘비플(Beeple)’이라는 예명의 디지털 아티스트 마이크 윈켈만은 이 작품이 팔리며 단숨에 생존 작가 중에서는 3번째로 높은 경매가를 기록한 작가가 됐다. 이 작품은 작가가 제목처럼 5000일에 걸쳐 제작한 작품 중 5000개를 조합한 뒤 블록체인 암호화를 통해 고유한 인식값을 붙인 NFT이다. 미술경매 시장에 불어온 NFT 열풍은 277년 역사의 소더비 경매 역시 NFT 작품을 도입하겠다고 나설 정도로 빠르게 번졌다.
그간 높은 예술성을 가진 작품들만이 경매에서 거래된 관행도 바뀌고 있다. NFT 시장의 빠른 확대로 비록 예술적 가치가 높지 않더라도 NFT가 제공하는 희소성의 가치 덕에 그동안은 거래될 것이라 생각할 수 없었던 콘텐츠까지 시장에 나오고 있다. 트위터 공동 창업자 잭 도시가 15년 전 올린 트위터 글 한 줄은 NFT 경매를 통해 약 1,630이더리움에 팔렸다. 판매 시점의 시세로 32억 9,000만 원 정도 되는 가격이다. 심지어 미국 영화감독 알렉스 라미레즈 말리스는 자신과 친구 4명의 방귀 소리를 1년간 모아 만든 ‘마스터 컬렉션’을 NFT 경매에서 434달러(약 49만 원)에 판매하기도 했다. 이세돌 프로바둑 기사가 2016년 인공지능 ‘알파고’와 벌인 세기의 대국 중 유일하게 승리한 제4국도 NFT로 발행되어 경매가 진행 중이다. 이 NFT는 대국 당시 바둑판에 흑돌과 백돌이 차례로 놓이는 모습을 포함해 알파고로부터 불계승을 이끌어낸 ‘신의 한 수’가 표시된 기보를 배경으로 이 기사를 촬영한 사진과 서명 등을 담았다.

백신 여권부터 보험까지, 적용 범위는 더욱 넓어질 것

가상자산으로서의 NFT는 막 떠오르는 시장의 분위기를 타고 가상화폐처럼 높은 수익을 거둘 수 있다는 기대심리까지 더해져 더욱 인기를 모으고 있다. NFT 분석 사이트인 넌펀저블닷컴에 따르면 지난해 한 해 동안 NFT 시장의 거래량은 2억 5,000만 달러
(약 2,812억 원)에 달했다. 비록 NFT 시장을 두고 새로운 형태의 디지털 자산시장이라고 보는 시각만큼이나 열풍에 편승한 투기라는 의견도 맞서고 있지만 나름의 시장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현재까지 ‘NFT 거래소’를 표방하고 나선 플랫폼만 해도 ‘슈퍼레어(SuperRare)’, ‘오픈씨(OpenSea)’, ‘라리블(Rarible)’ 등 900개가 넘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 이를 입증한다.
자산으로서의 거래 기능 외에 NFT의 암호화 기술을 바탕으로 실생활에 적용하는 모습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대표적으로 코로나19 백신을 맞은 사람에게 발행하는 백신 여권 역시 백신의 종류와 접종 날짜 같은 개인정보를 담아 해외 출입국이나 공공장소 출입 과정에서 쓰일 수 있게 각국 정부가 활용하고 있다. 여기에도 블록체인 기술 기반의 NFT 시스템을 활용하는 방안이 논의되는 것이다. 그밖에 NFT와 탈중앙화금융(Defi, 디파이)을 조합해 보험 상품을 개발하는 프로젝트인 ‘Yinsure’ 등도 NFT의 보다 발전적인 활용을 점치게 하는 사례다.

마이클 윈켈만의 디지털 작품 <TORTOR2>, <GAX-4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