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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조건

글 이민경(<불안한 어른>저자, 대구대학교 교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들 말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나이와 성숙함에 대한 통념들에 영향을 받고 있다. 때에 맞춰 성취해야 하는 과업들에 대한 부담도 적지 않다. 우리는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할까? 그보다 먼저, 우리 사회에서 ‘어른스러움’이란 대체 무엇일까?

저런 어른이 되고 싶다?!

최근 아카데미상을 받은 배우 윤여정은 이전에 없던 ‘새로운 어른’의 모습으로 화제다. 일흔을 훌쩍 넘긴 그가 보여주는 ‘꼰대스럽지’ 않은 태도를 접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탄탄한 내공으로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온 한 배우에 대한 존경만큼이나 뜨겁다. 젊은 층에서 노년층에 이르기까지 모두 제각각의 이유로 그의 모습에 열광했지만, 나이에 대한 사회적 통념으로부터의 자유는 그에게 매료되는 공통분모다. 우리 사회의 나이에 대한 부담 혹은 억압이 적지 않았다는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지만, 나이에 맞는 ‘정상적인’ 삶의 모습이 있다는 통념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는 대부분 나와 타인의 나이를 의식하고 살아간다.
‘나이에 맞는’ 특정한 삶을 실체라고 할 수는 없다. 인생을 나이라는 숫자로 구별하는 생애 주기는 우리의 삶을 온전하게 담아내지는 못하는 일종의 이데올로기다. 마찬가지로 ‘어른다움’도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사회적 구성물이다. 시대와 사회에 따라 ‘나이다움’, 혹은 ‘어른다움’은 모두 다르게 재구성된다. 나이에 대한 규범은 때로는 계층과 성별에 따라 차별적으로 작동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기도 하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어른의 조건도 모두 다르다. 최근 한 조사 결과(보건복지포럼 2021.03)는 우리 국민들의 연령 기준과 규범에 대한 인식이 연령층, 성별에 따라 제각각임을 보여준다. 법적, 정책적 기준과도 차이가 난다.

어른이 되기 위한 ‘가상의 허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에 맞는 모습이나 성취가 있다는 사회적 통념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한다. 이 과정에서 누군가는 상처를 입기도 하고, 마음의 분열을 겪기도 한다. 연구 작업을 위해 내가 만났던 청년들도 그랬다. ‘나이에 맞는 어른의 자격’을 갖추기를 기대하는 사회적 통념이나 주위의 시선이 때로는 경제적인 물리적 조건보다 힘들다는 고백이 적지 않았다. 특정한 나이가 되면 안정된 직업을 갖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기르는 ‘어른’이 되기를 기대하는 주위의 시선 때문에 마음의 부담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청년들의 삶의 모습과 조건은 이런 사회적 통념과는 거리가 있다. 우리 사회의 직업적 안정성은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고, 결혼연령도 갈수록 늦춰지고 있다. 비혼을 선택하는 비율도 빠르게 높아지는 추세다. 결혼은 하더라도 아이를 낳지 않거나, 낳을 생각이 없는 경우도 많다. 젊은 세대는 우리 사회가 그동안 기대해 왔던 ‘어른의 조건’과 점점 멀어지고 있다.
비단 청년층만이 아니다. 다른 연령층에 속하는 사람들도 삶의 조건이나 모습이 가파르게 변화하고 있다. 아동기는 이전에 비해 길어지고 있고, 평균 기대수명도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지금 여기의 삶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는 근대적 관념으로서의 생애 주기는 종종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삶의 단계라는 이름으로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보이지 않는 폭력이 되기도 한다. 자신의 욕구 혹은 현실과는 다른 ‘나이다움’의 외피를 입어야 하는 상황은 마음의 균열을 가져오기 마련이다. 따라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나이다움’, 혹은 ‘어른스러움’에 대한 부담으로 불안을 경험하기도 한다.

성숙은 삶의 도착지가 아니라 과정 그 자체다

물론 불안은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현대인들에게 누구나 경험하는 자연스러운 것이기도 하다. 구조적, 정서적 안전망이 부재한 사회에서라면 더욱 그렇다. Z세대로 호명되는 1995년 이후에 태어난 세대들의 두드러진 특성이 불안이라는 보고도 있다. 우리는 대부분 서로 다른 이유로 각자의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 정도와 이유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불안의 마음을 부정적으로만 볼 이유도 없다. 오히려 불안은 삶을 추동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프로이트의 말처럼 불안과 열정은 동전의 양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각자 서로 다른 삶의 철학과 목적을 가지고 살아간다. 따라서 모두가 성취해야 하는 ‘나이에 어울리는 조건’이나 반드시 갖추어야 할 ‘어른스러움’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어른의 품격을 갖추는 성숙이란 우리 삶의 도착지가 아니라 과정에 가깝다. 따라서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것은 어른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가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성숙한 어른이 되기 위한 성장의 길을 멈추지 않고 걸어가고 있는가일 것이다. 가파르게 변화하는 사회는 우리의 몸과 마음이 더 유연해질 것을 요구하고 있기도 하다. 무엇보다 우리는 생의 전 과정을 통해 나와 타인의 삶을 성찰하고 배우며 성장해나가야 하는 평생학습시대를 살고 있다. 이런 시대에 ‘어른다운 성숙’이란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무게를 감당하면서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가는 과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