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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과
전기의 문명사적
공통점

글 한종수(<라면의 재발견> 저자)

한국인의 소울 푸드 목록에서 뺄 수 없게 된 라면, 상륙한지 60년이 흘렀다. 그 사이 한국 사회는 경제력과 위상, 문화 등 전 분야에서 큰 변화를 겪어왔다. 가난의 음식에서 취향의 음식으로 변모해온 라면에 깃든 역사 이야기는 우리 주변의 ‘익숙한 것’을 탐구하는 방법 또한 돌아보게 한다.

너도 나도 아는 맛, ‘당연한’ 맛

라면, 너무나도 익숙한 존재다. 한국에 사는 성인이라면 ‘라면’을 안 먹어 본 이는 없을 것이며, 직접 도전해본 첫 ‘요리’가 라면일 가능성도 높을 것이다. 할 줄 아는 요리가 라면밖에 없는 이들도 있을 터다.
물론 라면을 싫어하는 이들도 적지는 않다. 하지만 그들에게 “라면이 맛이 없어서 싫어하십니까?”라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들이 라면을 싫어하는 건 ‘인스턴트식품이어서’,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이유 때문일 거다. 그러나 이런 ‘웰빙족’ 조차도 라면이 가장 편리하고 값싸게 괜찮은 맛을 보장하는 식품이라는 사실을 부인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대형 서점의 서가를 가득 메운 음식과 요리 책 중 현대 생활에서 너무나도 ‘당연한 존재’인 라면에 대한 책을 쉽게 찾아볼 수 없었다. 무슨 이유일까? <라면의 재발견>을 쓰면서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았는데, 물과 공기를 다룬 책이 별로 없다는 사실과 비슷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너무 흔하고 당연한 것들에 대해서는 탐구심이 생기지 않는다. 추측하건대 ‘전기(electricity)’에 대한 책도 그 중요성에 비해서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근대 산업화의 산물이기도 한 라면과 전기는 우리 삶에 너무 익숙하고, 값이 싸기에 그 중요성을 잘 느끼지 못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존재가 아닐까?

라면의 발전과정과 문명사의 공통 코드 - 보편성과 특수성

다소 거창해 보일지도 모르는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인간은 누구나 똑같다. 먹고, 자고, 싸고, 일하고, 쉬고, 놀다가 결국은 병들고 죽는다는 면에서. 하지만 인간은 체력, 외모, 지력, 감성이 모두 다르기에 결코 똑같을 수 없는 존재이다. 즉 ‘보편성’과 ‘특수성’을 한 몸에 가지고 있다. 인간이 모인 조직도 보편성과 특수성이 조화를 이루어야 지속성을 가지고 성공할 수 있다. 인류의 문명을 단순화한다면, 더 편리한 것을 계속 찾고 개발하고 대중화했던 과정만이 남을 것이다.
재화에도 이 법칙이 유효하다. 라면의 발전 과정은 훌륭한 예시가 될 수 있다. 라면만큼 보편성과 특수성이 잘 조화를 이룬 데다 편리하기까지 한 상품도 드물 것이다. 라면은 면과 분말 또는 액상수프, 그리고 고명으로 구성되고, 봉지나 용기에 담긴다. 동서양은 막론하고 이런 라면의 구성요소는 똑같다. 하지만 그 재료는 하늘과 바다, 육지에서 나오는 거의 모든 육류와 채소, 곡류 등이 들어갈 정도로 다양하다. 천 원 안팎의 라면 한 봉지엔 100가지가 넘는 재료가 들어있다. 이슬람 국가들에게는 그들의 율법이 지정한 방식대로 도살한 가축의 고기만을 사용하는 할랄 라면이 따로 있을 정도이니 보편성과 특수성을 모두 갖추고 있는 식품이라 할 수 있다.
거대한 매장의 가공식품코너를 가득 메우고 있는 우리나라의 식품산업이 실질적으로 시작된 것도 1963년에 등장한 라면 덕분이다. 식품산업의 발전은 축산과 양식, 상품작물의 재배 등을 요구하게 되면서 농어촌의 큰 변화도 가져왔다.

라면으로 보는 ‘모던’ 코리아

1963년 9월 15일, 처음 등장한 ‘삼양라면’은 기본적으로 국민들의 허기를 메우기 위한 대용식이었으며, 기술적으로 보면 일본 ‘묘조라면’의 복사품에 불과했다. 처음 몇 년은 라면이라는 단어가 비단(라), 솜(면)을 연상시켜 식품으로 인정받지도 못했을 정도로 생소한 존재였다. 하지만 일단 맛을 알기 시작하자 정말 빠른 속도로 토착화가 이루어졌다.
이후 쇠고기맛 라면, 짜장 라면, 칼국수 라면이 개발되었고, 매운맛이 가미되면서 완전한 한국화가 이루어졌다. ‘신라면’, ‘불닭볶음면’ 등이 한국을 대표하는 라면이 되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하고도 남는다. 88올림픽을 앞두고는 ‘사발면’이 등장하면서, 용기면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었고, 여가 및 나들이의 훌륭한 간식이 되었다. ‘팔도비빔면’은 액상 스프로 비벼먹는 새로운 라면의 시대를 열었다. 지금은 전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모든 형태의 국수가 ‘라면화(化)’되었을 뿐 아니라, 부대찌개나 순대, 감자탕 등 대중 음식의 대부분도 라면화되었다.
2010년대 후반 들어서는 소비자들의 입맛대로 만들어지는 수많은 레시피가 소셜 미디어를 풍성하게 장식했으며, 영화 <기생충>에 등장하는 ‘짜파구리’는 세계적인 규모로 유행하기도 했다. 이처럼 라면이 주·조연으로 등장한 사건들은 당대 한국의 경제, 사회, 문화의 단면을 보여줬다.

‘익숙한 것’을 탐구할 때 멀리를 볼 수 있다

전기도 라면처럼 보편성과 특수성을 두루 갖추고 있다. 우선 생산 방식이 수력, 화력, 원자력, 풍력, 태양열, 지열, 조력 등 육해공에서 나오는 유무형의 모든 에너지를 사용할 정도로 다양하다. 우리나라 발전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화력발전도 유연탄과 무연탄, 중유와 가스를 두루 사용한다. 물론 이 원료들은 대부분 수입품이다. 그리고 전기는 빛과 동력, 열로 변하여 엄청난 수의 기계를 움직임으로써 세계 10대 경제대국인 한국을 떠받치는 산업의 피와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더구나 20∼30년 안에는 자동차의 대부분이 전기차 등의 친환경차로 바뀔 것이므로 에너지 분야에서 전기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이다.
짧게나마 라면과 전기의 ‘문명사적 공통점’을 찾아보았다. 멀찍이도 바라보고, 아주 작은 부분들도 살펴보았다. 이젠 느껴볼 차례다. 좋아하는 라면을 꺼내어 포장에 쓰여 있는 재료들을 읽어보자. 그리고 전기 레인지에 라면을 끓여 맛보자. 소우주가 그 안에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