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처럼, 따뜻하게 안아줄 수만 있다면
글 편집실 참고 <그림의 힘>(2020)
생각만으로도 기분 좋은 미소가 지어지는 사람, 또는 추억이 있다면 여기 이 그림 속에 담긴 감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끝없이 따스한 볕을 내리쬐는 해의 미소, 해가 나누어준 따스함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아이들의 모습은 무구함, 편안함 그 자체를 형상화하고 있다
해와 아이들 | 1952~1953 | 이중섭 | 49x32.6cm
가끔 난 마냥 따뜻하고 싶어
그대가 웃어버릴 수밖에 없을 만큼
마치 어둠이라곤 알지도 못한 듯
그렇게, 햇살처럼 말이야
…
햇살처럼, 따뜻하게 안아 줄 수만 있다면
추운 그대 데워줄 수만 있다면
그대를 온종일 따라다니는
그림자를 지워줄
그대 햇살이 될 수만 있다면.
루시드폴 <햇살은 따뜻해>중
그리움이 햇살 되어 내리쬘 때
커다란 태양이 아이들을 보듬어 안고 있다는 듯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다. 그 주변엔 아이들이 주황빛 볕을 쬐며 놀고 있는데, 하늘인지 바다인지 모를 푸르른 공간엔 꽃과 잎사귀도 피어나고 있다. 어떤 꽃은 만개했고, 어떤 꽃은 막 피어나기 직전이다. 안온하고 평화로운 감정은 보는 사람들에게도 자연스레 옮아온다.
한국의 대표적인 근대서양화가 이중섭이 1952~1953년 사이 그린 그림이다. 이렇게나 따뜻하고 평화로운 그림이지만, 그림을 그렸던 시절은 그가 가족과 떨어져 힘겹게 살아가던 즈음이었다. 이중섭은 피난을 위해 1951년 가족과 제주도에 1년쯤 살았다. 일본에서 만난 부인 야마모토 마사코(남덕)와 두 아들도 함께였다. 궁핍했지만 서귀포의 아름다운 풍경과 날씨,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생에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선물했다. 이후 그가 남긴 편지들에서는 ‘제주도 시절’에 대한 그리움도 자주 언급됐다. 하지만 전쟁이 이어지고 생활고로 고통을 겪던 이중섭은 아내와 아이들을 일본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는 가족과 함께했던 아름다운 시간들을 떠올리고 화폭에 담으면서 고통을 감내했다. 그림엔 가족이 다시 함께 사는 일에 대한 희망의 감정이 담겨있다. 비록 몸은 멀리 떨어져있지만, 태양처럼 멀리 있는 가족들을 따스하게 안아주고 싶었던 화가의 마음이 엿보인다. 자신의 마음을 햇살에 비유할 수 있다면, 세상 어디든 못 닿을 곳이 없을 것이다.
인용한 루시드폴의 노래 <햇살은 따뜻해>의 가사들은 마치 이중섭의 그림 <해와 아이들>을 노래로 번역한 것만 같다. 햇살에 빗대어진 누군가의 마음은 아이들의 벗은 몸이 춥지 않게 데워주고, 어둠이라고는 알지도 못하도록 온종일 따라다니고 싶어 한다. 우리의 부모님들이 우리에게 느꼈던 감정이 정확히 그랬을 것이고, 우리 또한 사랑하는 누군가를 향해 이러한 애틋한 감정을 느낀다.
“참된 애정이 충만할 때 비로소 마음이 맑아지는 것이오”*
<그림의 힘>의 저자 김선현은 이 작품이 애정의 대상인 가족을 형상화하는 데 주황색이 쓰였다는 점을 강조한다. 주황은 사교적인 활동과 대인관계에 도움이 되는 색깔이다. 빨강처럼 강하지 않으면서 에너지를 주고, 노랑의 쾌활함 또한 갖고 있다. 그림이 주는 편안하고 긍정적인 감정의 비밀이 여기 또 하나 숨어있다.
시대적 상황, 가족과의 생이별, 궁핍한 생활로 평탄하지 않았던 이중섭의 삶은 1956년, 40세로 마감된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많은 작품을 남겼다. 널리 알려진 <황소>와 같은 향토색 짙은 작품들은 물론, 어린이, 물고기, 게가 그려진 환상적인 그림도, 아름다운 풍경화도 많이 그렸다. 그 중엔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어린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그린 작품들이 특히 사랑받았다. 끝내 가족과 이별한 채로 쓸쓸하게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그림에 담아둔 사랑의 마음은 오래도록 남아서 우리의 마음까지 데워주었다.
*이중섭이 남긴 편지 중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