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에너지 산업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하다
글 이건오(그린포스트코리아 기자)
2021년은 전기차 시장의 포텐이 터질까. 지난해 성장세를 보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인해 모든 산업분야가 역성장을 기록했으나 ‘친환경’ 타이틀을 가진 분야는 선방했다. 특히,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시장과 전기차·수소전기차 시장은 괄목할만한 성과를 냈다.
친환경 산업의 핵심 키워드가 된 ‘전기차’
지난해 글로벌 시장에서의 전기차 판매는 300만 대에 달한다. 전년 대비 40% 이상 성장했다. 이러한 고속 성장의 배경에는 다양한 이슈가 포함돼 있다. 먼저 직접적인 보조금·인센티브 혜택의 이유가 있겠다. 그러나 더 큰 동인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 저감과 전기화, 그리고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의 브랜드파워를 뒤엎을 새로운 기회라는 점이다.
EU 탄소규제와 국내 전기차 브랜드의 판매 증가에 대한 재미있는 데이터가 있다. EU는 내년부터 모든 제조사가 판매한 차량의 탄소배출량이 95g/km를 넘으면 1g당 95유로씩 판매한 차량 대수만큼 벌금을 내야한다. 수출 물량이 더 많은 현대차의 경우, 내년 EU에 물게 될 벌금 규모는 3조 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되며 이는 현대차의 영업이익과 맞먹는 액수로 번 돈을 그대로 벌금으로 내야 하는 것이다.
또 테슬라가 주도하던 전기차 시장이 이제 모든 완성차 기업들의 참여로 춘추전국시대에 접어든 것도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애플과 화웨이도 천문학적인 투자를 예고하며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올해 전 세계에 출시될 전기차는 100여 종에 이른다고 한다. 이러한 경쟁과 공급 확대는 전기차 판매비용을 낮추고 품질을 더욱 높일 수 있어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와도 충분한 경쟁이 이뤄질 수 있다.
우리나라도 2030년까지 기업 보유·임차 차량을 전기·수소차 등 무공해차로 100% 전환할 것을 공개 선언하고 단계적으로 이행하는 캠페인인 ‘K-EV100’을 앞세워 적극적인 전기차 보급에 나서고 있다. 2022년까지 전기차 총 43만 대, 수소전기승용차 총 6.5만 대 보급을 목표 하는 정부는 올해 전기이륜차 2만 대를 포함한 전기차 12만 1,000대, 수소차 1만 5,000대를 보급해 총 13만 6,000대를 보급할 계획이다.
전기차 ‘경제성’, 수소차 ‘활용도’... 경쟁 아닌 상호보완으로 성장
여러 매체에서 전기차와 수소차를 경쟁 구도 프레임에 넣는다. 장단점이 확연히 대척점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로의 단점을 보완한다면 시장에서의 시너지는 더욱 클 것으로 예상된다.
전기차와 수소차 두 방식 모두 전기를 이용해 구동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전기차는 고전압 배터리에서 전기에너지를 전기모터로 공급해 구동력을 발생시키고, 수소차는 수소연료전지를 통해 공기 중의 산소를 직접 반응시켜 전기를 생산하는 방식이다.
전기차는 저렴한 충전 비용과 충전소 인프라 확보 등의 장점이 있지만 주행거리가 짧고 충전 소요시간이 다소 길다는 단점이 있다. 수소차는 긴 주행거리와 짧은 충전시간을 장점으로 하는 반면, 충전소 부족과 다소 비싼 차량 가격, 충전 등 유지비용이 단점이다. 경제성이 좋은 전기차는 출퇴근 등 비교적 운행거리가 짧은 사용자가 유리하고, 활용도가 높은 수소차는 화물이나 여행 등 장거리 이동이 잦은 사용자가 선택하기에 좋다.
진짜 주목해야 할 포인트는 ‘에너지’
친환경차로 주목받고 있는 전기차와 수소차의 보급 확대에 있어 주목할 만한 포인트는 ‘친환경성’과 ‘에너지원’으로의 역할이다.
먼저 친환경적으로 더 개선이 이뤄질 수 있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 자동차라는 개념에서 확장해 차량의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운행 및 폐기에서 발생하는 탄소, 충전을 위해 사용하는 전기의 출처 등 좀 더 넓은 범위에서 친환경성을 개선할 여지가 있다.
두 번째는 전기차가 이동 수단을 넘어 발전소의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다. 충전과 방전을 통한 전기차의 운행 방식은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하고 계통의 안정화를 꾀할 수 있다. 가상발전소(VPP, Virtual Power Plant)로 에너지 프로슈머의 역할을 소화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주목되고 있는 것이 V2G(Vehicle To Grid) 기술이다. 전기차 충전 급증에 따른 전력피크 상승과 신재생발전 증가로 인한 발전 출력제약에 연계해 계통 안정화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전기차를 이동식 ESS로 활용하는 개념으로, 전기요금이 저렴한 심야 시간대에 충전하고 전력 사용 피크 시간대에 전기를 판매해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전력회사는 발전소 가동률을 줄일 수 있어 에너지 수요와 공급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고, 대부분 해안가에 밀집된 전력 발전소의 송전에 대한 부담도 줄일 수 있다.
전기차 배터리 수명은 10년 정도로 알려져 있다. 리튬이온배터리는 500회 정도 충전하면 주행거리가 짧아지고 충전 속도가 느려지는 등 성능 저하가 발생한다. 1회 충전 시 주행 가능 거리가 300~400km임을 감안했을 때, 15만~20만km를 주행하면 배터리를 교체해야 한다. 전기차에서 은퇴한 배터리는 성능은 낮아졌지만 70~80% 효율을 유지할 수 있어 이러한 배터리를 모아 ESS로 재사용하려는 시도도 이뤄지고 있다.
재사용이 어려울 정도의 폐배터리는 희귀금속 물질인 리튬, 니켈, 구리, 망간 등을 추출해 다른 용도로 재활용할 수 있다. 이러한 시도는 전기차 생산 원가를 낮추고 시장의 보급 확대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저명한 에너지 학자 토니 세바(Tony Seba)는 뉴욕 5번가를 찍은 두 장의 사진을 자주 언급한다. 1900년과 1913년에 같은 거리를 찍은 사진으로, 마차로 가득했던 거리가 불과 13년 만에 자동차 거리로 바뀐 장면이다. 1900년에 자동차만 남고 마차는 모두 사라질 것이라는 말을 아무도 믿지 않았으나 자동차 기술은 아주 짧은 시간에 이를 현실화했다. 전기차의 등장과 전환의 속도는 그것보다 빠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