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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묵묵히 하루를 살아내는 펭귄처럼

내 직업은 극지에서 동물의 행동을 관찰하는 일이다. 지난 2014년부터 십 년간 남극과 북극을 오가며 펭귄과 물범을 지켜보고 있다. 연구 과업을 위해 평소엔 실험동물을 대하듯 거리를 두고서 냉정함을 유지하려 노력하지만, 동물이 좋아서 시작한 일이라 가끔은 그들의 사는 모습을 가만히 넋을 놓고 보게 된다.

처음 세종기지에서 만난 펭귄은 예상했던 것처럼 그저 귀여웠다. 작고 통통한 몸으로 실룩실룩 걷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사랑스럽고 순수함으로 가득 찬 생명체가 또 있을까?

하지만 가까이서 펭귄을 오랜 기간 관찰하면서 이내 내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알게 됐다. 번식기 펭귄 부모는 평소 푹 자는 걸 볼 수 없었는데, 실제로 수면시간을 측정해 본 결과 평균 4초 정도자다가 깨기를 반복하며 간신히 쪽잠으로 버틴다는 걸 알게 됐다. 하늘엔 새끼를 노리고 덤벼드는 도둑갈매기가 있어서 오래 잠들 수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펭귄을 자세히 보면 온몸에 상처가 많았다. 해안가 바위나 얼음을 걷다 미끄러져 넘어지기 일쑤였고 경사가 가파른 언덕 위에 사는 녀석들은 한참을 올라가다가 종종 굴러 떨어졌다. 그럴 때면 펭귄은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 눈 언덕을 올랐다.

지체할 새가 없었다. 둥지엔 거센 바람과 추위로부터 새끼를 지키는 짝이 있었고 그 품 안에서 새끼들은 먹이를 가져올 부모를 기다렸다. 바다에서 잔뜩 먹이를 잡아다가 배에 담은 채 새끼들에게 돌아가야 했다. 끝도 보이지 않는 얼음 위를 몇 시간이고 걸었고 바다에 닿으면 영하의 찬 바다로 몸을 던졌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 얼음을 걸으며 먹이를 찾아 떠나는 펭귄의 뒷모습을 한참 지켜본 적이 있다. 수만 개의 둥지가 모여 있는 번식지를 등지고 일사불란하게 사냥터를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다 한 녀석이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 둥지 쪽을 쳐다봤다. 그리고 다시 앞으로 걸었다. 순간 내가 보낸 하루가 떠올렸다.

극지 현장으로 출장 가는 몇 달을 제외하곤 나 역시 직장인과 다름이 없다. 월급날 빠져나갈 카드 값을 고민하고 은행 금리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어느 날 새벽, 출근하러 가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문 앞에 선 채로 한참 서성인 적이 있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잠든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문을 다시 열고 들어갈 수가 없어서 그냥 직장으로 향했다. 그 펭귄은 무슨 생각으로 가던 길을 멈췄을까? 바다로 나가는 게 두려웠던 걸까? 둥지에 남은 짝과 새끼를 떠올리고 다시 길을 떠났을까? 펭귄도 인간과 같은 방식으로 하루를 고민하고 생각을 하진 않겠지만, 겉으로 보기엔 그들의 하루도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그저 그들이 이제껏 살아온 방식으로 살아낼 뿐이다.

가끔은 동물의 삶에서 교훈을 찾거나 의미를 찾고 싶을 때도 있다. 이렇게 동물에 대한 글을 쓸 때면 간혹 그들의 삶을 더 값지고 위대하게 포장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펭귄은 하루를 열심히 살아내는 존재일 뿐이다. 매일 아침 일터로 출근을 하는 직장인처럼 남극 펭귄 역시 바다로 출퇴근을 하며 새끼를 키운다. 확실한 건 펭귄의 하루도 녹록지 않고 출근길이 그리 즐겁진 않을 거라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펭귄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그저 묵묵히 반복되는 일상을 견뎌내며 살고 있다.

이원영 극지연구소 선임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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